2026년 3월 13일 0시,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격에 직접 상한선을 두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보통휘발유 리터당 1,724원, 경유 1,713원, 실내등유 1,320원을 넘기면 법적 제재 대상이 된다. 한국 경제정책에서 보기 드문 강한 시장 개입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행 첫날 SNS에서 위반 주유소 신고를 직접 요청했고, 지역별 주유소 가격 지도까지 올리며 "바가지는 신고하세요"라고 밝혔다. 같은 날 전국 평균 가격은 휘발유 1,883원, 경유 1,897원으로 각각 하락했다. 숫자만 보면 정책의 즉각 효과처럼 보인다.
왜 지금 이 정책이 나왔나
이번 조치는 미·이란 전쟁 이후 중동 리스크 확대와 국제유가 급등이라는 외부 충격 속에서 나왔다. 정부 입장에서는 민생 물가를 방치하기 어렵고, 정유·유통 단계의 과도한 가격 전가를 차단하겠다는 명분이 분명하다. 취지 자체는 서민 보호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문제는 정책 의도와 실제 효과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격 통제는 단기 진정에는 유효할 수 있어도, 공급과 유통의 행동을 바꾸며 다른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최고가격제의 양면성
가격 상한은 소비자 체감 부담을 빠르게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정유사 수익 압박이 커지면 공급 축소, 출하 조정, 수익성 높은 채널로의 물량 이동 같은 유인이 생긴다. 정부가 공급가격 규제와 판매가격 반영 시차를 함께 설명한 것도 이런 현실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구조적 한계도 분명하다. 국내 주유소 가격에서 정유사 공급가 비중은 절반 수준이며, 나머지는 세금과 유통 마진이다. 공급가에 상한을 걸어도 세금 구조가 그대로면 소비자 체감 인하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류세 탄력세율 조정 같은 직접 수단과의 병행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된다.
대통령의 '신고' 메시지, 효과와 부담
대통령이 직접 가격 감시에 나선 장면은 민생 대응 의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시민 입장에서는 "정부가 지금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를 받기 쉽고, 단기 심리 안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동시에 권력 행사의 방식에 대한 질문도 남는다. 특정 지역 가격 지도를 대통령이 공개하고 신고를 독려하는 방식은, 자칫 행정지도와 여론 압박의 경계를 흐릴 수 있다. 위법 판단은 제도와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하며, 정치적 메시지는 그 절차를 보완해야지 대체해선 안 된다.
본질은 에너지 구조 취약성
이번 논쟁의 핵심은 단기 가격 조치보다 한국의 구조적 에너지 취약성이다. 석유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중동 정세가 흔들리면 국내 물가와 민생이 곧바로 충격을 받는다. 최고가격제는 응급 처치일 수는 있어도 근본 치료는 아니다.
정부가 진정한 민생 안정 정책을 말하려면, 단기 상한제와 함께 수입선 다변화, 비축 확대,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효율 투자라는 중장기 전략을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 정책 신뢰는 현장의 체감과 구조개혁의 지속성에서 나온다.
결론: 통제는 시작일 뿐, 해법은 구조개혁이다
석유 최고가격제를 무조건 실패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외부 충격기에 민생을 보호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일정한 정책적 정당성이 있다. 다만 가격을 누르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짜 평가는 지금부터다. 단기 하락 수치가 일시적 신호에 그칠지, 공급·세금·유통·에너지 전환까지 포괄하는 실질 개선으로 이어질지에 따라 이 정책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약속은 지킵니다"라는 구호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단기 처방을 넘어선 구조적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이 글은 2026년 3월 13일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한 시사 사설로, 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