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경제 대책들이 속속 시행되고 있다. 서민 생활안정을 위한 각종 지원금부터 중산층 대상 세제 혜택까지, 정부는 '촘촘한 지원망'을 구축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대책들을 들여다보면, 수혜 대상의 경계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각지대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3천만원 벽: 서민 지원의 아이러니
대표적인 서민 지원책인 '생활비 긴급지원'의 경우, 4인 가구 기준 월소득 324만원(중위소득 75%) 이하 가구가 대상이다.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약 3,888만원이다. 이는 곧 연소득 3천만원대 후반 가구는 지원받을 수 있지만, 4천만원을 조금 넘는 가구는 배제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경계선' 근처 가구들의 실질적 생활수준이다. 연소득 3,800만원 가구와 4,200만원 가구의 실질 구매력 차이가 정부 지원 유무를 결정할 만큼 크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수도권에서 자녀 교육비와 주거비를 감안하면, 이들 모두 '서민층'에 해당한다고 봐야 맞다.
필자가 최근 만난 한 학부모는 "월급 350만원으로 생활하는데 긴급생활비 지원 대상에서 딱 10만원 차이로 탈락했다"며 "차라리 일을 줄여서 지원받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이런 현실을 접하며 느끼는 것은, 경계선 설정의 합리성보다는 행정 편의가 우선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1억원 함정: 중산층을 위한 듯 중산층을 위하지 않는
정부의 중산층 지원책들도 비슷한 맹점을 드러낸다. 주택 관련 세제 혜택의 경우, 대부분 '공시가격 9억원 이하' 또는 '시가 12억원 이하' 주택이 대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기준은 지역별 편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서울 강남구의 30평 아파트와 대전 서구의 50평 아파트가 같은 9억원이라면, 실거주자의 경제적 여건은 천차만별이다. 강남구 거주자는 상당한 자산가일 가능성이 높지만, 대전 거주자는 평범한 직장인일 수 있다. 그럼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더 심각한 것은 '1억원 함정'이다. 연소득 8,800만원인 가구와 1억 200만원인 가구를 놓고 보자. 후자가 각종 중산층 지원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후 소득과 실질 생활비를 계산해보면, 두 가구 간 생활수준 차이는 미미하다. 오히려 1억 조금 넘는 가구가 세금 부담은 더 크면서 지원은 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다.
사각지대의 구조적 원인
이런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일률적 기준'의 한계에 있다. 정부는 행정 효율성을 위해 소득, 자산, 나이 등 수치로 명확히 구분되는 기준을 선호한다. 하지만 실제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은 이런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영업자 A씨는 장부상 연소득 5천만원이지만 매출 변동성이 크고 임대료 등 고정비용 부담이 크다. 반면 공무원 B씨는 연소득 4,500만원이지만 안정적 소득과 각종 복리후생이 보장된다. 현행 기준으로는 A씨가 더 여유롭다고 판단하지만, 실질적 경제 상황은 B씨가 더 나을 수 있다.
지난 10여 년간 각종 정부 지원책을 지켜보며 느낀 점은, 기준의 경직성이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특히 경계선 바로 위에 위치한 계층이 가장 큰 박탈감을 느낀다. 이들은 지원도 받지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무거운 세금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안적 접근법의 필요성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지역별, 가구 특성별 차등 기준 적용을 고려해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 1인 가구와 다자녀 가구의 생활비 구조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를 반영한 지원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경계선 완충 구간' 설정도 검토할 만하다. 기준 소득의 110% 이하 가구에게는 지원 금액을 단계별로 감액하여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1원 차이로 탈락'하는 부조리를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경계선 계층'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예산 제약 하에서 수혜 대상을 좁히는 방식보다는, 지원 강도를 조절하여 더 많은 계층이 혜택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 경제 대책의 진정한 성공은 수치상 지원 규모가 아니라,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계층이 실제로 혜택받는 것에서 측정되어야 한다. 3천만원 벽과 1억원 함정 사이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시급한 시점이다.
이 글은 공개된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한 시사 사설로, 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담고 있습니다.